왜 눈을 가려야 할까? 버드박스 줄거리
5년 전, 임신 중이었던 화가 맬러리는 (산드라 블록) 그녀의 동생 제시카와 시베리아에서 시작된 집단 자살 사건이 유럽으로 확산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됩니다. 이후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이상 행동을 보이는 한 여성이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뉴스에서 본 이상 현상이 미국에도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혼란 속에서 동생 제시카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보고 미쳐서 사고를 낸 후 트럭으로 뛰어들어 자살합니다. 맬러리는 도망치다 다른 생존자들이 모여있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들은 눈으로 보지 않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며, 창문을 모두 가리고 외부와 차단합니다. 이후 맬러리와 생존자들은 생존을 위해 여러 어려움에 처하지만, 새가 위험을 감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집에 있던 생존자들은 게리라는 미친 남자에게 속아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됩니다. 그는 사람들이 이상 행동을 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존재를 보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미친 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맬러리는 두 아이를 지키며 살아남습니다. 시간이 흘러 영화는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고 맬러리가 두 아이와 함께 위험한 강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맬러리는 아이들에게 밖으로 나갈 때에는 눈가리개를 꼭 써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새장에 담긴 새를 챙겨 아이들과 함께 강으로 갑니다. 맬러리와 아이들은 강에서 험난한 여정을 합니다. 어떤 남자가 눈가리개를 벗으라고 유혹하기도 하지만, 그를 무찌릅니다. 맬러리는 아이들과 급류를 통과합니다. 배가 뒤집히기도 하지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숲을 지날 때는 알 수 없는 존재가 속삭이며 유혹하기도 하지만, 맬러리는 의지를 굳게 다지며 아이들과 함께 안전지대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맹인 학교로,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안전한 곳입니다. 맬러리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그들을 자신의 자녀로 받아들이고, 안전지대에서 새를 풀어주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의 상징성,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와의 비교
영화 버드박스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 알 수 없는 존재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이를 본 사람들은 이상 행동을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합니다. 시각이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 공포를 넘어 인간의 내면적 트라우마나 상실감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눈가리개를 착용하며 보이지 않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는 현대인을 비판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를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버드박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현존하는 인류 문명이 붕괴하고 난 뒤를 다루는 세계관) 독창적 서사를 제공합니다. 같은 장르의 대표작인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청각을 기반으로 한 생존 영화인데, 버드박스는 시각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습니다. 감각의 제한이 생존과 연결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와 함께, 영화는 심리적 긴장감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대규모 액션이나 무시무시한 비주얼의 괴물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나는 전설이다나 월드워Z처럼 좀비와 바이러스에 초점을 맞춘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화 요소입니다. 대신 인간들의 갈등, 선택, 그리고 상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관객들과 소통합니다. 결론적으로 버드박스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를 통해 심리적 공포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장르적 요소를 새롭게 선보인 작품입니다. 관객들은 단순한 생존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받아들입니다.
버드박스의 열린 결말이 주는 여운과 해석
영화 버드박스의 결말은 생존과 희망,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여운을 깊게 남깁니다. 맬러리와 두 아이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끝내고 맹인 학교로 개조된 피난처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시각적 자극을 차단한 곳으로, 그들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로부터 안전합니다. 하지만 이 결말은 관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맬러리가 아이들에게 마침내 이름을 붙여주면서 자신이 그들의 어머니임을 인정하는 장면은 감정적인 클라이맥스입니다. 생존을 위해 아이들을 지켜온 그녀가 이제 그들과 감정적으로 연결을 맺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의 유대를 강조하며, 관객에게 희망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결말은 여전히 많은 질문을 하게 합니다. 맬러리와 아이들이 마침내 도착한 피난처가 영원히 안전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 일지에 대한 답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어지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는 존재와의 싸움은 끝났는지를 스스로 상상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영화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민하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